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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23:43

공기업 민영화와 민주주의


아리스토텔리스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통치형식은 민주주의였다. 이와는 약간 다르게, 그의 스승인 플라톤은 소수의 도덕적인 앨리트가 지배하는 국가를 이상적인 통치형태라고 보았다. 이게 현실화 된것이 귀족정 같은 것일 건데, 이러한 귀족정은 소수에 의해서 소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 소수가 항상 도덕적이고 항상 합리적이며, 이타적일 수만 있다면야 플라톤이 생각한 통치형태가 이상적일 수 있겠으나, 이게 어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신과 그의 시종인 천사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닌한은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가 만들어질리가 없을 것이다.

하긴 신이 만든 세계라고 해서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도 않다. 기독교인들이야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모두 신의 섭리고, 결국에는 신의 섭리가 실현되는 이상적인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하겠지. 근데, 어째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믿음의 종교라고 하던가.

얘기가 옆으로 샛는데, 도덕적인 소수의 앨리트 인간에게 국가의 통치를 맡긴다는게 말처럼 될리가 절대 없을 것이다 라는게, 앨리트정치의 한계라는 얘기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에 반대해서, 아리스는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자면,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그들이 통치의 주체가 된다 이런게 되겠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상황에서인 것일 뿐이고,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문제들을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로 보았던것은 어리석은 민중에 의한 중우정치와 빈민들이 그들의 힘을 모아서 (열심히 일을 한 결과)가진자의 재산을 빼앗게 될 거라는 분배와 관련된 문제였다.

중우정치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교육을 받아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중산계급이 민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민권을 가진자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한적인 민주정을 통치방식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최근에 와서야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게 되면, 성별,교육의 정도,재산의 정도에 상관없이 투표권을 주는 민주정이 일반적으로 실현해야될 통치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교육의 일반화로 국민의 다수가 어느정도의 교육수준을 달성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민주주의를 정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단계로 생각되는게 대중적인 교육시스템의 구축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상에서 중산층이 몰락하면, 민주주의도 위험에 처한다라는 (거의 상식화된)주장에서 아리스의 중우정치에 대한 염려는 지금까지도 유효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교육을 통해서 어느정도 해결되었고, 그렇다면 빈민들이 그들의 힘을 모아서 가진자의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 가지는 걸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두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게, 가진 재산의 정도에 따라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양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빈민은 1표를 10배의 재산을 가진 부자는 10표를 이런 형식이 되겠다. 쉬운방법이긴 한데,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얘기가 되니, 고상한 철학자로서의 양심을 가진 아리스가 용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리스는 불평등을 제거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한 정도의 - 적어도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 풍요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예를들자면 공공의 이익을 거두어들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이 가난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다른 상업활동을 하거나 해서 부자들에게 빼앗을 필요없이 그들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공유지를 만들어서 경작하게하고 그 생산품을 나누어주는 등의 정책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복지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2000년도 전에 아리스는 복지정책을 생각해 내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복지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에게서 일정부분의 돈을 세금형태로 거두어들여야 할 것이다. 적당한 선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할테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 공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복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공기업은 시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을 최소의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공기업 운영자금은 세금을 걷어서 마련하는 것이고, 세금은 (제대로된 조세정책을 시행한다면)부자가 더 많이 지불하게 되어 있으므로 재화를 재분배하며, 모두가 필요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결국 탄탄한 중산층이 생겨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두터운 중산층은 민주주의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또한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이 되는 것이므로 다수의 국민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 적어도 돈이 최고인 기업에 비해서는 -을 가질 수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란 즉, 다수의 국민의 권리를 빼앗아서 기업에게 양도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적 방안이다. 민영화라는 말도 눈속임일 뿐이다. 여기에서 이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줄 만한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기업의 대기업화라고 하긴 뒷통수가 근질근질 하니까. 민영화라고 보기좋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가 바로 효율에 대한 얘기다. 기업이 운영하니 만큼 당연히 효율도 좋을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무엇에 대한 효율인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효율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설마 걔들이 말하는 효율이란 것이 공익에 대한 효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 그들이 말하는 효율이란 기업의 효율 즉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의 수익에 대한 효율이다.

정리하자면, 그들이 말하는 민영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율이 가지는 의미라는 것은, 공익 즉 다수의 이익을 소수기업의 이익으로 효율적으로 전환한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된다거나 공공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창출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영화가 그 유일한 대안이라고 선전하고 있다는데 있다. 공기업을 효율화 시키는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민영화는 여러가지 방법중 한가지 방법일 뿐이며 그 중 최악의 방법이다.

사기업은 공기업 보다 더 나은가 ? 그들은 이 물음에도 답을 하지 않는다. 그냥 사기업은 효율적이고 공기업보다는 더 나을 거라고 막연히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더 믿음이 가고,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닌)더 효율적이고, 더 깨끗하고, 더 변화가능성이 있다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보인다.

공기업의 국민의 세금을 갉아 먹는다고 ? 물론 방만하게 운영되는 측면이 있고, 그러한 부분은 개선해나가야 겠지만 공기업이란 원래 이익을 내기위해서 만들어진게 아니다. 왠만해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게 공기업이다.

그럼 사기업은 국민의 세금을 갉아먹지 않는가 ? IMF때를 잊었는가 ?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투입된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 말이다.

수천억 단위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해외로 돈을 빼돌리고, 불법으로 상속을 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게 지금의 기업이시다. 그나마 시민단체가 난리를 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도 공기업이 민영화 되어서 잘되었다는 경험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모르겠다.. 잘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민영화후 다수의 국민의 생활이 엿된 경우가 백만배는 더 많아 보인다.

공기업은 다수의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재화를 생산해낸다. 혹은 인프라를 지원한다. 민영화된 공기업은 결국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공익을 희생시키게 될 것이다. 희생의 결과로 다수의 국민에게 고통이 안겨질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기업에 봉사하는 정부는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참고 기다리라고, 그러면 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그들이 장악한 언론을 이용해서)선전할 것이다.

2메가와 그의 정부가 이걸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 정말 모르고 있을지도 ? -. 내 생각에 그들의 목표는 민주주의를 망치는데 있다고 본다. 아리스가 염려한 다수의 빈민에 의한 중우정치의 실현. 공고육을 무력화 시킴으로써, 소수의 앨리트 지배계층이 다수의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한 무기력한 - 뇌에 정보는 많이 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비판적 사유능력을 잃어버린 - 대중을 선동하는 국가.

분배와 평등,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좌빨 혹은 국가 체제 전복세력으로 내몰리고, 그들에게는 엄정하고도 준엄하며 만인에게 공평한 - 그러나 부패한 기업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적이고 보편성을 상실한 - 법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보편성을 상실한 법은 그 권위를 잃어버리는 법, 정부는 강력한 공권력을 이용해서 법을 집행하려고 할것이다. 이 법을 현실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강력한 공권력 - 그러나 기업과 권력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 을 가진 정부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이른바 야경국가.

먼 미래의 얘기 같겠지만,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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